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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 ㄱ ) 성씨(姓氏) 모음

상산김씨(商山金氏) 족보 돌림자

by 하얀나비 미드저니 2023. 2. 5.

 

본관(本貫)의 연혁(沿革)

상산(商山)은 경상북도 상주(尙州)의 옛 지명(地名)으로 삼한시대(三韓時代)에 진한(辰韓)의 영토였으며, 서기 185년(신라 벌휴왕 2) 사벌국(沙伐國) 또는 사불(沙弗)로 독립해오다가 신라 첨해왕(沾解王 : 제 12대왕, 재위기간 : 247~261) 때 상주(上州)라 하였다. 그 후 상락군(상洛郡) 사벌주(沙伐州)로 불리었다가 경덕왕(敬德王 : 신라 제 35대 왕, 재위기간 : 742~765)이 사주(尙州)로 개칭하였다.

 

가문(家門)의 유래(由來)

상산김씨(商山金氏)의 시조(始祖) 김수(金需)는 경순왕(敬順王)의 후손으로 고려(高麗) 때 보윤(甫尹)을 지내고 누대(累代)에 걸쳐 상산(商山 : 상주의 옛 지명)에 살았으며, 그의 손자(孫子) 식(湜)과 증손(曾孫) 희일(希逸)은 집사성(執事省 : 국가의 기밀과 서정을 관장하던 최고의 행정기관)의 으뜸 벼슬인 시중(寺中)을 지냈다.

현손(玄孫) 비궁(匪躬)은 찬성사(贊城事 : 문하부의 정2품 관직)를 역임한 후 상산부원군(商山府院君)에 9세손 일(鎰)은 대호군(大護軍)을 지내고 상락군(上洛君)에 봉해졌으며, 10세손 녹(祿)은 판사(判事)로 상성군(商城君)에 봉군되었다. 그리하여 후손들은 수(需)를 시조(始祖)로하고 상산(商山)을 관향(貫鄕)으로 삼아 세계(世系)를 이어오면서 고려(高麗)와 조선조(朝鮮朝)에 걸쳐 훌륭한 명신(名臣)을 많이 배출하였다.

뿌리공원-상산김씨-조형물 전면
뿌리공원 상산김씨 조형물 전면

상산김씨(商山金氏) 족보 돌림자

 

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(人物)로는 상성군(商城君) 녹(祿)의 맏아들 득배(得培)가 1395년(고려 공민왕 8) 홍건적(紅巾賊)이 침입했을 때 서북면도지휘사(西北面都指揮使)로서 이방실(李芳實), 안우(安祐)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여 그 공으로 수충보절공신(輸忠保節功臣)에 책록되고 정당문학(政堂文學)이 되었으며, 1361년(공민왕 10) 다시 20만의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개경(開京)까지 쳐들어와 왕(王)이 복주(福州)로 피신하는 치욕적인 상황에서 정세운(鄭世雲), 이방실(李芳實), 최영(崔瑩), 이성계(李成桂) 등과 함께 반격하여 개경(開京)을 수복하는 데 공(功)을 세웠다. 한편 원종(元宗) 때 중랑장(中郞將)을 지낸 충(忠)은 문하시중(門下寺中) 치원(致遠)의 손자로 삼별초(三別抄)의 난(難)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.

 

1281년(충렬왕 7) 일본(日本)을 정벌(征伐)할 때 공을 세워 기성군(箕城君)에 봉해졌다. 그의 증손(曾孫) 운보(云寶)와 신보(臣寶) 형제는 1353년(공민왕 2) 왜적(倭賊)이 침입했을 때와 홍건적의 난(亂) 때 공을 세워 판전의시사(判典義寺事)와 봉순대부(奉順大夫)에 각각올랐다. 특히 운보(云寶)는 이성계(李成桂)를 도와 개국원종공신(開國原從功臣)에 서훈되고 중추원부사(中樞院副使) 겸 사복시(司僕寺)에 이르렀으나 아우 신보(臣寶)는 벼슬을 버리고 전남 영광(靈光)으로 낙향하여 불사이군(不事二君)의 충절을 지켰다. 운보의 아들 덕생(德生)은 태조(太祖) 때 무과(武科)에 급제하고 낭장(郎將)으로 재직시 방원(芳遠 : 후에 태종이 됨)이 사냥을 하다가 표범의 습격을 받아 신변이 위험했을 때 화살로 표번을 쏘아 죽여 말(馬)을 하사(下賜) 받았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뒤에 호군(護軍)을 거쳐 세종(世宗) 때 가정대부(嘉靖大夫) 동지중추원사(同知中樞院事)로 추증되었다. 세종(世宗) 때 무신(武臣)으로서 두 차례에 걸쳐 침입한 야인(野人)을 무찌르고 무용(武勇)을 떨친 사우(師禹)는 1460년(세조 5) 한성부윤(漢城府尹)으로 신숙주(申叔舟)와 함께 두만강(豆滿江) 밖 모련위(毛漣衛)의 야인(野人)을 토벌하고 지중추원사(知中樞院事)에 이어 판한성부사(判漢城府事)를 지낸 후 병조판서(兵曹判書)에 올랐다. 순천부사(順天府使) 우생(佑生) 정몽주(鄭夢周)의 문하(門下)에서 학문을 배워 구경(九經), 사서(四書)에 통달하였고, 성삼문, 박팽년 등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단종(端宗)이 억울하게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자결한 절신이며, 세종(世宗) 때 친시문과(親試文科)에 급제한 양경(良敬)은 공조판서와 대사헌  에 올라 판돈령부사를 지낸 광준(光準), 옥과현감(玉果縣監) 범(範), 군수(郡守) 염(廉)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.

상산김씨 돌림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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